[박한표 인문일지] '품격 있는 어른'이 되는 길 (1)

박한표 승인 2024.09.29 12:56 의견 0
박한표 인문운동가, [사진=더코리아저널]


[박한표 인문일지] '품격 있는 어른'이 되는 길 (1)

오늘은 고전인문학자 고미숙의 "나이듦 수업" 강의와 함께 '품격 있는 어른"이 되는 길을 사유해 본다. 고미숙은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청춘'이라는 말과 '몸'에 대한 우리의 상투적인 생로병사관(生老病死觀)에서 벗어나, '어른'으로 늙어갈 권리를 주장했다. 자신의 생체 리듬을 회복하고, 혈연적 관계망에서 벗어나 우정의 시간을 살아가자고 강조했다.

작년에 나는 그녀로부터, 산다는 것은 관계와 활동이라는 것을 배웠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나의 일상에서 실천하고 있다. 생명은 근원적으로 '활동'과 '네트워크'를 좋아한다. 즉 '활동'과 "관계'가 생명의 원리이기 때문이다. 소유와 성공, 곧 돈과 물질에 관련된 것만 매달리면 꼭 막히게 되고, 끝에서는 허무할 뿐이다.

살맛이 나려면, 어떤 활동을 하고 관계를 맺는 게 중요하다. 계속 어딘가로, 누군 가로 이어져야 한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길 위의 존재'이기도 하다. 그런데 길 위에서 누군가를 만난다고 할 때 그걸 연결해 주는 건 지성밖에 없다. 사업으로 사람을 만나는 건 교환관계에 들어가는 거다.

그런데 지성을 통해 누군가와 친해지면 그 공간이 바로 우리의 일상으로 들어 온다. 그 일상 속에서 소유보다는 사람, 즉 존재로 나가는 게 중요하다. 그러면 서로의 생각이 접속을 한다. 이런 접속을 통해 가치가 생성된다. 무에서 유가 나오는 것이지, 유에서 유가 나오는 것은 유통기한이 아주 짧다. 돈 놓고 돈 먹는 것은 굉장히 유용하고 효율적이지만, 그건 순식간에 다 거덜나는 경우가 많다.

보이지 않는 무에서 유가 나와야 가치가 되는 거다. 원래 보이지 않는 지혜에서 물질이 나온다. 예를 들면 디지털 시대에는 보이지 않는 정보가 온갖 더 한다. 이 무형의 자산 없이는 물질만 갖고 돌려 막기를 할 수 없다. 정신적인 자산을 가지고 있을 때는 설령 망해도 그 다음에 이 실패에서 뭔가 배우고 도약할 수 있는 베이스를 갖게 된다. 그런 사람은 새로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알면서도, 우리는 일상에서 활동이 아니라 노동을 하고, 접속을 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화폐를 늘려야 하기 때문에 관계가 단절된다는 말이다. 다른 것들과 접속할 시간이 없다. 그러니까 생성이 이루어지지 않고, 감각의 차이만 만들어 낸다. 차이의 생성을 만들어 내는 것이 삶의 큰 즐거움이고 의미가 된다. 반대로 감각만이 늘어나는 게 중독이다. 이를 피하고, 하루가 재미 있으려면, 다음과 같은 생활의 규칙을 만들어 보는 거다. 고미숙의 주장이지만, 나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 목적론이 해체되어야 한다. 일상이 리듬을 타야 한다. 리듬을 잃는 이유는 목적에 도달한 다음에 살겠다는 목적론이 문제이다. 매일의 일상은 리듬을 타야 한다. 일상이 그 목적에 종속이 되면 안 된다. 그러다 보면, 시간의 무상함 앞에서 그냥 주저 앉게 된다. 매일 매일을 하는 과정으로 여겨야 한다. 내가 이루고자 하는 자유, 행복을 오늘의 조건 안에서 어떻게든 구현해 내는 거다. 아프면 아픈 대로, 아픈 상태에서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상태에서 지유와 행복을 위한 액션을 취하는 거다.

▪ 그리고 시간에 리듬을 탄다. 이 기술은 노년에 더욱 필요하다. 메 순간을 나 스스로 과정으로써 즐길 수 있어야 하는 거다. 그러다 보면 죽음도 하나의 과정이 될 수 있다.

▪ 그리고 소박하고 단순한 삶을 산다. 그러는 가운데 인간, 자연 그리고 내가 늘 만나는 사물들과 우정을 나누어야 한다. 그래야 상품 소비에서 벗어날 수 있다. 작고 있는 물건을 깨끗하게 하고 변형시켜 나에게 맞는 물건을 고쳐 사용하면, 신상품에 눈길이 가지 않는다. 이를 프랑스에서 '브리콜라주'라 한다. 그러면 물건의 수를 줄일 수 있다. 이게 소박하고 단순하게 사는 거다.

▪ 그리고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고, 그 이야기를 해야 할 친구를 만난다. 그렇게 친구들을 만나 내 이야기를 하다 보면 우리는 웃는다. 그리고 웃어야 한다. 왜냐하면 웃음은 생명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활동으로써 웃음과 이야기를 연마하고, 내면에서는 어제 몰랐던 것에 대한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 이게 지성이다. 그 지성으로 내적인 충실함과 외적인 활동이 리듬을 타야 한다. 고미숙은 이런 일상을 줄여서 이렇게 말한다. "명랑하고, 지혜로워라!"

고미숙은 우리가 장수를 축복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불안해 하는 원인을 자본주의 문화와 정신의 빈곤에서 짚어냈다. "충만한 어른"이 아니 "철없는 상태로 대부분을 보낸 삶은 산 것이 아니다. 나이 들고 오래 산다는 것은 내가 그 시간을 어떻게 통과했느냐가 핵심이지 그저 객관적으로, 양적으로 수명이 늘어난 게 중요한 게 아니다. 그건 연명에 불과하다"는 거다.

그의 강의록을 읽어 가며, 관심 가는 이야기들을 나열해 본다.

- 사람은 누구나 생로병사의 과정을 겪는다. 태어나면서부터 늙고 병들어 죽는 일을 어떤 사람도 피할 수 없고 온전히 겪어야 한다. 그 앞에서는 모두가 공평하다. 그러니 우리는 생로병사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그게 공부하는 이유이다.

- <<동의보감>>에서 말하는 인간의 가장 자연스러운 수명은 125세이다. 수명이라는 게 성장기에 5를 곱하면 나오는 거라 한다. 인간이 성장하는 시간을 25년으로 본다. 스물다섯까지는 계속 성장세포가 열려 있다가 그 이후에는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다는 거다. 5를 곱하는 이유는 음양오행에 따르는 거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산업혁명 이후 몇 백 년 동안 인생을 편향적으로 살았다. 열심히 일하고, 돈 벌고, 돈 쓰다가 50, 60이 돼서 정년을 맞이하면 죽는 거였다. 그러니까 자본주의 생로병사관이 '돈 벌다 죽어버려라'였던 것이다.

- '물질이 풍요로워지면 정신은 빈곤 해진다.' 평소의 내 생각이다. 현대의 자본은 인간을 '풍요롭게 만드는 부'가 아니라 인간을 '가난하게 만드는 부'를 만들 뿐이다. 왜냐하면 자본은 끊임없이 '새로운 필요'를 만들어 내지만 그 새로운 필요를 선택하고 구입할 수 없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일상화된 궁핍에 시달려야 한다.

이를 "현대적 가난"이라고 한다. 이반 일리치, <<누가 나를 쓸모 없게 만드는가?>>(허택 옮김)에서 얻은 생각이다. 현대사회의 자본은 인간을 불구로 만든다. 어떻게? 발달된 교통 수단을 이용할 수 있게 된 대신에 튼튼한 다리로 어디든 갈 수 있는 능력을 잃게 되었고, 교육의 기회는 늘었지만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독학의 능력을 상실하고 있다.

또한 아주 사소한 상황에서도 119를 찾는 현대인들은 '위험에 스스로 대처하는 능력'을 잃어버리게 됐다. 그리고 자신이 얼마든지 해결 할 수 있는 문제도 '전문가의 손'에 맡김으로써 스스로를 무력화시키고 있다. 만 있으면 다 되고, 행복할 거라라고 믿지만 돈이 있어도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 언제나 주치의를 부를 수 있는 경제력 대신에 부지런히 일상 속에서 즐겁게 살아가며 좀처럼 병원의 문을 두드릴 필요가 없는 건강한 삶을 사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은가?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얼마든지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는 경제력을 갖는 대신 골치 아픈 문제에 시달리지 않는 삶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사람은 기업과 전문가가 만든 상품에 어느 정도를 넘어 지나치게 의존하다 보면 자기 안에 있던 잠재력이 파괴된다." (이반 일리치) 내가 늘 가슴에 품고 사는 문구도 "역경을 이기긴 쉬워도 풍요를 이기긴 어렵다"이다.

늘 '풍요'를 경계하며, 노자가 말한 ""見素抱樸(견소포박, 순결한 흰 바탕을 드러내고, 통나무를 껴안아라)"과 "少私寡欲(소사과욕, 사사로움을 적게 하고, 욕심을 적게 하라)" 정신과 "습정양졸(習靜養拙, 고요함을 습관들이고, 고졸함을 기름)"의 태도를 견지하려 한다.

- 물론 자본주의는 인류를 배고픔과 전염병으로부터 구제했고, 심지어 겨울에도 춥지 않고, 여름에도 덥지 않게 만들었다. 그러나 우리가 삶을 대하는 태도는 빈곤해 졌다. 우주의 대원칙이 부유하면서 정신적 가치도 풍요롭기는 불가능하다. 기회가 되면 늘 소환하는 것이 '금 수저가 지니지 못한 4 가지'이다. 오늘은 여기 까지만 고미숙의 "나이듦 수업" 강의 이야기를 하고, 나머지는 내일로 넘긴다.

'금수저', '부유한 상속자'로 태어나면, 갖지 못하는 것이 다음과 같이 네 가지이다.

▪ 영혼이 성숙될 기회를 갖지 못한다. 영적인 성숙은 피, 땀, 눈물이라는 3가지 액체를 많이 흘리지 않고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들의 인격이 빈곤하다. '금수저'의 가정에서는 모든 것이 거래되기 때문이다. 영성이 부족하다. 보통 우리는 돈이 좀 부족하면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그런 상태가 되어야 자아를 덜어낼 수 있다. 그 순간 겸손해지고, 조금이라도 도움을 받으면 정말로 감사의 마음이 솟구친다. 이 비움과 감사를 훈련하는 게 바로 영성이다. 그런데 '금수저'에게는 그런 기회가 없다.

▪ 부모로부터 통제를 많이 받으면 세상을 보는 관점의 독립을 갖지 못한다. 세상과 사람을 보는 나 만의 독립적인 관점을 가질 수가 없다는 이야기이다. 게다가 이들은 '스스로를 증명할 수 없다'는 약점도 갖는다. 인생을 실패해 봐야만 완전한 제로 베이스에서 인생 출발을 한다. 그래야 철저하게 자기 눈으로 세상을 보는 안목을 획득하게 된다. 주입된 관점에서는 창조를 못한다. 게다가 가문의 이름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 따라야 할 규칙이 너무 많이 존재한다. 예를 들면, 진심은 그렇지 않다 해도 정중한 태도를 지켜야 하고, 담배를 피워도 안 된다. 그리고 아버지의 말을 절대로 따를 것도 규칙에 들어 있다. 이런 식이다.

▪ 다른 이에 대한 믿음을 갖지 못한다. 사람들을 못 믿는다. 물질적, 신분적 풍요는 가식(假飾) 속에서 생활하기 쉽다. 그래서 재산을 물려받은 2, 3세는 다른 사람을 의심하는 의심병도 많다. 가식을 많이 경험해봤기 때문이다. 부자들은 살면서 무척 경계심이 많다. 그래 사람들을 잘 믿지 않는다. 그래서 좋은 출발 조건과 행복한 삶과는 관계가 크지 않다. 그 큰 유산을 가졌다면 걱정이 없을 것인데, 그렇지 않다. 그들은 상처받기 쉬운 내면을 갖고 있다. 그리고 돈을 뜯길까 봐, 의심이 그의 머리에 먹구름처럼 떠다닌다.

▪ 일을 하지 않아, 무 균실 안의 '금수저'들은 다른 사람들과 격리되어 현실 세계와 단절된 채 살아가야 한다. 사실 일은 인생을 설계할 때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 우리는 일을 통해 자신이 사회에 공헌하고 있다는 느낌과 배움을 얻고, 도전에 맞서 성장하며,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고, 자립하는 동시에 공동체에 속하는 특권을 누릴 수 있다. 인간은 자신이 쓸모 있고 생산적인 존재라고 느껴야 성숙해진다. 그래 우리는 일이 있어야 한다. 일이 있다면, 돈에만 집중하지 않고 삶에서 의미 있는 일에 공헌할 수 있다. 그리고 일은 가족으로부터 조금이나마 독립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금수저', '부유한 상속자'들이 '행복하고 의미 있는 삶'을 자동적으로 보장받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실제 삶은 그와 거리가 멀다. 행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모두 동등하며 출발점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 이해를 따지지 않는 우정, 가족 간의 애정, 열정을 따르는 삶, 일상의 작은 행복 등, 행복의 진정한 비밀은 어떠한 시회계층에도 속해 있지 않다. 부자가 아니어도 가능하다. 너무 돈, 돈 할 필요 없다. 그리고 재산 때문에 일상이 달라지지 않아야 한다. 행복해지기 위해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내게 뭐가 필요한지 알아야 한다.

사랑하는 별 하나/이성선

나도 별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외로워 쳐다보면

눈 마주쳐 마음 비쳐주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나도 꽃이 될 수 있을까

세상 일이 괴로워 쓸쓸히 밖으로 나서는 날에

가슴에 화안히 안기어

눈물짓듯 웃어 주는

하얀 들꽃이 될 수 있을까

가슴에 사랑하는 별 하나를 갖고 싶다.

외로울 때 부르면 다가오는

별 하나를 갖고 싶다

마음 어두운 밤 깊을수록

우러러 쳐다보면

반짝이는 그 맑은 눈빛으로 나를 씻어

길을 비추어 주는

그런 사람 하나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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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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