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산 시담] 스카이 캐슬

박미산 승인 2024.08.17 17:43 의견 0
박미산 시인, 작가 [사진=더코리아저널]


[박미산 시담] 스카이 캐슬

구정물이 아우성치며 흐르다

그대로 얼어버린 가난한 빙판길

연탄재를 밟고 비탈진 길을 올라간다

꼭대기엔 대문도 없는 푸석한 집이 있었다

엄마는 우아한 성을 뜨개질하며 항상 같은 노래를 했다

너희들은 용이 되어야 한다고

꽁꽁 언 시궁창 길을 거슬러 올라가는 길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알면서도,

담장도 없이

어깨와 어깨를 맞댄 지붕 아래

단칸방에서 꾸역꾸역 기어 나온 아이들이 미끄럼을 탔다

그 좁은 길을 가득 메우며

아이들은 떼를 지어 내달렸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긴 쉬웠다

날기는커녕 발을 쉽게 떼지 못했다, 나는

넘어지고 자빠지며

눈물만 훌쩍 건너뛰었다

그녀의 스카이캐슬에는

뜨개바늘이 회초리가 되어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도 용꿈을 간직한 늙은 엄마는

대바늘로 성을 짜며

더 계속 올라가라고,

더 높이 올라가라고,

노래 부른다

-『흰 당나귀를 만나보셨나요』(채문사, 2020, 76-77쪽)

......

드라마 ‘스카이캐슬’을 보면서 도화동과 모래마을이 생각났다.

상류층의 엄마나 하류층의 엄마나 아이들의 성적에 목을 매는 건 마찬가지였다.

드라마에서 상류층의 부모들은 불법을 저지르면서까지 아이들 성적을 올리지만,

어렵게 사는 우리 엄마들은 시궁창을 벗어나기 위해 회초리로 자식들을 다그쳤다.

몇 푼 받지도 못하는 뜨개질을 밤새 하면서 자식 뒷바라지를 하던 엄마들은 아이들이 용이 되는 꿈을 간직하며 산다.

배수구라는 게 없는 산동네 길은 한겨울엔 온통 시궁창 물이 얼어붙어 올라가기가 어려웠다.

올라가다가 미끄러지고 또 올라가다가 미끄러져 나뒹굴기를 수십 번 해야 겨우 집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좀 산다는 평지 아이들은 과외나 학원에 다니며 성적을 올렸다.

그러나 산동네 사는 우리들은 성적이 조금 올라갔다가 미끄러지는 게 다반사였다.

그런데도 엄마들은 어떻게 하든 개천에서 용이 나길 바랐다.

우리들은 용이 되어 날기는커녕 발을 쉽게 떼지 못하고

넘어지고 자빠지며

눈물만 훌쩍 건너뛰었다.

맑은 물에서 용이 되어 아랫동네로 내려가려는 엄마들의 꿈은 요원했다.

더 높이 올라갈 수 없는 우리들은 푸른 물에서 날지 못하고

종아리에 회초리로 맞아 생긴 붉은 용을 어루만지면서 자랐다.

...***필자 소개 / 박미산

시인.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현대시 전공. 문학박사.

문화공간 (백석, 흰 당나귀 )운영.

1993년 <문학과 의식>수필 등단

2006년 <유심> 시 등단

2008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등단

시집 『루낭의 지도』, 『태양의 혀』, 『흰 당나귀를 만나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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