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김준철]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에서 와인의 역할

김준철 승인 2024.08.05 20:47 의견 0
김준철 와인전문가, 김준철 와인스쿨 대표 [사진=더코리아저널]


[기고 김준철]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에서 와인의 역할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을 때, 프랑스 군인들은 1일 정량으로 카망베르 치즈 1개와 레드와인 250㎖를 받았고, 본격적인 참호전이 시작되는 1916년에는 500㎖로 늘어났다. 1917년에는 750㎖의 와인을 배급 받았으며, 더 구입하여 마실 수도 있었다.

1916년까지 육군은 연간 12억 리터의 와인을 병사들에게 제공했다. 전쟁 초기에 랑크도크의 포도밭 소유주들은 2,000만 리터의 와인을 군에 기증했으며, 북아프리카의 프랑스 식민지에서도 상당량의 와인을 생산했다.

병사들은 정량으로 나오는 맛없는 와인을 ‘짐승’, ‘싸구려’, ‘신와인’ 등으로 불렀으니까 그 품질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중 가장 많이 쓰이는 단어는 ‘Pinard(값싼 와인)’였다. 이 단어는 1880년대 프랑스 전역의 수비대에 일부에서 사용되었지만, 1900년대부터 주요 단어가 되었다.

영국과 호주의 정책은 더 보수적이었다. 영국령의 무슬림 남성을 제외한 영연방의 부대에는 매일 럼이 배급되었다. 매일 아침에 1온스(28㎖)가 배급되는 경우가 많았으며, 여기에 차나 커피를 섞어서 마시기도 했다.

오랜 기간 동안, 프랑스 군은 여러 지역에서 온 사람들과 함께 참호에서 살아야 했다. 그들은 와인을 같이 마시면서 문화와 관습을 공유하고 발전시켰는데, 이는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이전에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일이었다. 덕분에 호주 군인들은 화이트이든 레드이든 싼 와인이든 아니든지 와인 맛에 길들여졌다.

프랑스 와인산업은 전쟁으로 인해 샴페인 지역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포도밭이 파괴되었지만, 여전히 여성과 어린이가 수확한 포도를 사용하여 지하 저장고에서 와인을 생산하고 있었다. 전쟁이 끝나고 포도밭은 복원되었으며, 1919년, 프랑스 정부는 새로운 와인양조규칙과 12개 주요 지역을 채택하여 원산지명칭을 정하였다. 즉, 이것이 AOC 제도의 기반이 된 것이다.

옛날부터 술은 군인들의 두려움을 쫓아주고, 사기를 진작시키는 수단으로 사용되었고, 와인은 군인들에게 이런 용도는 물론, 주식이었고, 약이었다. 게다가 전쟁터의 식수는 오염되기 십상이었고, 이 때 와인은 물을 소독하는 수단이었다. 그래서 로마시대부터 군인들은 전투식량으로 일정량의 와인을 지급받아, 외지에 갈 때는 이를 물과 함께 섞어 마셨다.

저작권자 ⓒ 더코리아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