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항 칼럼] 인간적인 것과 기계적인 것
양자의 차이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빈틈" 유무다.
지난 31 일 이란의 테헤란에서 일어난 하마스의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 암살 사건은 단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자행되었다.
NYT에 따르면 두 달 전에 하니예가 머물 것으로 예상되는 숙소에 AI 폭탄을 설치해 두었고, 하니예의 얼굴과 목소리를 인식한 AI 폭탄은 1,000 km 떨어진 통제관에게 보고 후 승인을 받아 자폭하였을 것이라고 추정하였다.
섬뜩하다. AI 가 인간 생활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키겠지만 반대급부로 따라 다니는 "위험도" 역시 획기적으로 상승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창과 방패 발전의 문제이고 Top Dog Under Dog 문제로 앞으로 많은 시행착오를 겪게 될 것으로 예견된다.
이런 어마 무시한 AI 는 인간의 지적한계가 드러내는 빈틈을 메우려고 개발한 것이다.
인간의 뇌는 "크기"와 공급 가능한 "에너지"의 한계 때문에 생존과 번영에 미치는 정도의 위험을 피하고, 장애물을 넘는 데 요구되는 수준까지만 발달하였다.
따라서 인간의 뇌는 동시에 많은 자료를 검색하고 분석하여 답을 찾아 낼 수 없다. 고작 7 개의 자료를 동시에 기억할 정도이며 검색하여 분석하는 것도 개략적인 방향을 제시할 정도다.
그래서 인간은 필기도구를 이용하여 필요한 데이터를 한 자리에 모아놓고, 개발한 계산 방법을 이용하여 검색 분석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20 세기 말 펜타곤이 만든 컴퓨터의 도움을 받기 시작하여 지금은 전 세계가 컴퓨터 시대가 되었다.
컴퓨터는 인간의 뇌와 달리 크기와 에너지 공급에 제한이 없어 제공된 모든 데이터를 순식간에 검색 분석할 수가 있다.
여기에 AI가 개발되어 사고하고 판단하는 수준으로 발달하게 됨에 따라 인간의 뇌를 대치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이는 컴퓨터에 대한
인간의 통제권마저 가져가버린 셈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적인 것과 기계적인 것 간의 빈틈은 점점 더 벌어지게 생겼다.
AI 는 데이터 축적에 비례하여 정확도가 증가하는 데 반하여 인간의 뇌는 AI 때문에 쓸 일이 없게 되어 점점 퇴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추세가 계속되면 인간은 모든 것을 AI 에게 의지하게 될 것이고, 의지하게 되면 종속되게 되어 결국은 종말에 이를 것으로 예측된다.
이처럼 편리를 극도로 추구하다보면 제자리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그게 주역에서 말하는 變極의 원리이다.
인간이 자연의 이치를 뛰어넘을 수 없는 이유다.
어느 선에서 멈출 것인가 하는 문제를 집단지성은 찾아야 할 것이다.
마이 뭇다 아이가! 고마해라! 하는 영화 "친구" 에 나오는 대사가 적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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