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산 시담] 사춘기

박미산 승인 2024.07.21 13:26 의견 0
박미산 시인, 작가 [사진=더코리아저널]


[박미산 시담] 사춘기 / 박미산

밀리고 밀린 땀에

교복 블라우스가 푹 젖는다

매일 매일

내 몸이 젖고

버스가 젖고

흙길이 젖어

푸른 강이 되길 바랐다

한 알의 모래마저

뒤채지 못하는 만원버스

창밖은 개나리와 진달래가 활짝 피었는데

나의 눈동자엔 흙먼지만 찍힌다

안내양이 버스를 빵빵하게 부풀린다

그래도 나로부터 떨어지지 않는 모래알들

휘어지는 길목, 중심이 덜컹거린다

짐작할 수 없는 손이 스윽

치마 속을 훑고 간다

푸른 강이 순간 사라지고

개자식

첫 욕을 질겅질겅 씹어 삼키던 봄날

......

나의 사춘기는 늘 젖어있었다

집은 늘 빚쟁이들이 있었다.

나에겐 그나마 학교가 도피처였다.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시험 봐서 들어온 우리 학교는 대학 합격률이 높기로 유명했다.

해마다 예비고사는 100프로 합격하고 유명하다는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그 명성을 잇기 위해 우리 학교 학생들은 별 보기 운동을 했다.

우리들은 새벽에 학교에 가서 늦은 밤까지 공부했다.

집인 모래마을에서 동인천역에 있는 인일여고까지는 버스로 한 시간 정도 걸렸다.

거의 비포장도로여서 흙먼지와 함께 버스가 달렸다.

배차 간격이 길어서 버스는 항상 만원이었다.

버스 안내양은 정류장에 설 때마다 사람들을 안에 밀어 넣고

자신은 차 문간에 매달려 달렸다.

창밖은 개나리와 진달래가 활짝 피었는데

버스 안에 있던 나는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누군지도 모르는 손들이 등을, 엉덩이를, 교복 치마 속을 훑고 갔다.

소리쳐도 아무 소용이 없는 순간,

푸른 강이 되고 싶었던 나는 체념이란 걸 배웠다.

눈에 흙먼지만 찍혔던 나의 사춘기!

...***필자 소개 / 박미산

시인.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현대시 전공. 문학박사.

문화공간 (백석, 흰 당나귀 )운영.

1992년 <문학과 의식>수필 등단

2006년 <유심> 시 등단

2008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등단

시집 『루낭의 지도』, 『태양의 혀』, 『흰 당나귀를 만나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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