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산 시담] 바니와 주디 -난숙에게
츄바스코가 바다와 싸우고 있는 순간
그녀와 난 그 바다를 사랑했다
태양은 가득하고
바니와 주디가 아닌 우린
거친 바다와 텅 빈 천문대를 사랑했다
닥터 지바고가 바람과 함께 사라지고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는지 모르지만
우린 이유 없는 반항을 사랑했다
그녀는 시인이 되겠다고 했다
츄바스코인 줄 알았던 제자와
바니인 줄 알았던 그녀의 사랑은
세간의 풍랑에 휘둘렸다
선생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바다엔 수면제가 둥둥 떠다녔다
격렬하게 싸우던 바다를 그녀는
고요한 잠과 뚱뚱한 살로 바꿨다
텅 빈 천문대에서
닳고 닳은 시집을 들추며
지금도 푸르디푸른 바다를 읽고 있는 그녀
시인이 되지 않겠다던 내가
그녀의 시를 뭍으로 겨우겨우 밀어내고 있다
-『태양의 혀』(채문사, 49쪽)
창영초등학교를 무사히 졸업하고 인천여중으로 진학할 수 있던 건 내 바로 위인 광걸 오빠와 담임인 박복금 선생님의 배려 덕분이다.
교대를 졸업하고 처녀로 우리 학교로 부임한 선생님은 우리 반인 6학년 4반을 맡아 열성적으로 우리를 지도했다.
그 당시만 해도 중학교 고등학교 진학할 때 시험을 보았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시험을 봐서 수, 우, 미, 양, 가 분단을 나누어 수, 우 분단 아이들은 한 문제 틀릴 때마다 엉덩이를 맞았다. 난 비교적 온순한 아이라 집에서도 누구에게도 맞은 적이 없었다.
나는 맞기 싫어 공부 시간만큼은 열심히 수업을 들어 수 분단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그런 나를 담임 선생님은 예뻐하셔서 시험지 대금과 기성회비를 다 내주고 인천여중 원서까지 사주셔서 시험을 볼 수 있었다.
인천여중을 다니면서 단짝이 생겼다.
단짝인 그녀는 시인이 되겠다고 했고 나는 소설가가 꿈이었다.
우리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학과 공부는 뒤로하고 소설과 시집을 닥치는 대로 읽고 닥치는 대로 영화를 보러 다녔다.
학교에서 단체관람을 허락하기 전에 츄바스코,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 이유 없는 반항, 닥터 지바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등을 미리 봐서 학생주임인 아기돼지에게 걸려 운동장을 돈 것도 여러 차례.
그렇게 우리는 고등학교를 함께 진학했고 그녀는 원하던 대학 국문과가 떨어지고 2차로 성대 국문과를 갔고 나는 대학을 가지 못했다.
그녀는 무사히 졸업해서 인천 동산고등학교로 부임했다.
제자와 사랑에 빠진 그녀는 소문이 나면서 학교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고 결국 신경정신과를 다니게 되었다.
내가 신춘문예로 등단한 그해, 그녀로부터 전화가 왔다.
날씬했던 그녀는 어디로 가고 뚱뚱한 중년 여인이 나타나서 나는 처음엔 알아보지 못했다.
그녀의 꿈이었던 시를 얘기하면서 그녀의 목소리, 그녀의 눈빛, 그녀의 마음이 그대로 나에게 왔다.
헤어지면서 그녀는 나에게 봉투를 내밀었다.
청하 시선 열권의 시집을 나에게 주면서 이젠 본인에겐 필요 없는 책이라며 자기 집에 있는 시집도 모두 가져가라고 했다.
그러마고 했지만, 아직도 그녀의 시집을 갖고 오지 못했다.
아마도 나는 영원히 그녀의 소장 시집을 갖고 오지 않을 것이다.
그녀의 평생 꿈이 담겨있는 시집들이니까,
...*** 필자소개 /박미산
시인.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현대시 전공. 문학박사.
문화공간 (백석, 흰 당나귀 )운영.
1993년 <문학과 의식>수필 등단
2006년 <유심> 시 등단
2008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등단
시집 『루낭의 지도』, 『태양의 혀』, 『흰 당나귀를 만나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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