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김준철] 음악가들이 갈망하던 와인, “뤼데스하임(Rüdesheim)”

김준철 승인 2024.06.11 08:57 의견 0
김준철 와인전문가 [사진=더코리아저널]


[기고 김준철] 음악가들이 갈망하던 와인, “뤼데스하임(Rüdesheim)”

1827년 3월 26일 어두운 아침, 베토벤(1770-1827)이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 하인이 방으로 들어와서 오래 동안 기다리고 있던 라인가우 리슬링이 방금 도착했다고 알려왔다. 이 와인은 베토벤이 2월 초에 그의 출판사인 쇼트(Shott)에 보내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이미 기진맥진한 베토벤은 침대에 앉아 화가 난 채 주먹을 흔들며 다음과 같이 마지막 말을 뱉었다. “이런, 너무 늦었어.(“Schade, schade, zu spät!)” 그는 다시 침대에 쓰러지고 더 이상 말이 없었다. 그러나 가까운 친구들이 모여들어 새로 도착한 뤼데스하임(Rüdesheim) 리슬링을 숟가락으로 떠먹이며 그를 살리려고 노력했지만, 베토벤은 그날 저녁에 죽었다.

브람스(1833-1897)도 베토벤과 마찬가지로 라인가우 와인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브람스는 젊었을 때 슈만을 만나러 가면서, 걸어서 마인츠에서 라인가우를 경유하여 뒤셀도르프까지 갔다. 그는 작은 여행용 책자를 지니고 걸어서 두 달 동안 모든 포도밭을 섭렵한 것이다. 그리고 라인가우의 뤼데스하임에서 살면서 와인상과 중개상을 하고 있는 루디(Rudi)와 라우라 폰 베케라트(Laura von Beckerath)와 친구가 되었다.

브람스는 매년 여름 라인가우 포도밭을 방문했으며, 거기서 많은 작곡을 하는 데 시간을 보냈다. 교향곡 3번은 그가 뤼데스하임과 비스바덴에 있을 때 작곡한 것이다. 베토벤과 마찬가지로 그의 마지막 말 역시 와인에 관한 것이었고, 같은 뤼데스하임 리슬링이었다. 그는 임종 때 침대에서 리슬링을 숟가락으로 받아 마시면서 “아, 이 와인은 항상 맛이 좋아.”라고 의미 있는 한 마디를 남겼다.

뤼데스하임은 라인가우에 있는 유명한 포도산지로 “베르크 로트란트(Berg Rottland)”, “베르크 로제네크(Berg Roseneck)”, “베르크 쉴로스베르크(Berg Schlossberg)” 등 유명한 포도밭을 가지고 있다. 영국의 와인평론가 휴 존슨 (Hugh Johnson)은 이곳을 "라인 지방 최고의 와인 재배지역"으로 이야기했고, 프랭크 슌메이커(Frank Schoonmaker) 등 와인 전문가들이 극찬한 곳이다.

사실 이 지역 와인은 19세기까지만 해도 유럽에서 가장 비싼 와인에 속했다. 1896년 영국의 베리 브로스(Berry Bros. & Co.)사의 가격(12병 단위) 리스트를 보면, 라피트나 로마네가 130-140파운드인 반면 뤼데스하임은 200파운드를 기록하고 있다.

“뤼데스하임 기슭에 생기와 활력이 가득 찬 배들이 정박해있다. 나는 뤼데스하임 화이트 와인을 주문했다. 달빛에 비쳐 동화의 한 장면처럼 보이는 물결 속에 뤼데스하임이 울적한 로마 유적들과 더불어 비친다.” - 슈만(1810-1856)의 일기(182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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