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창환 공감유심] 영화인

도창환 승인 2024.05.19 17:36 의견 0
도창환 건축가 [사진=더코리아저널]


[도창환 공감유심] 영화인

.

.

우리 집도 영화인 가족이다.

큰형님은 김구선생님의 이야기인 '상해임시정부'와 이상의 '날개' 두 편을 동시에 제작해 쫄딱 망했다. 전자는 당시의 영화 10여 편에 가까운 엄청난 블록버스터였다. 덕분에(?) 이후 김구선생님 자제분들과는 가까운 사이가 됐고, 나중에 '백범기념관'을 주도해서 만들었다. 근데 60년대 말에 우리집이 그렇게 부자였을까?

20대말에 형님은 시나리오를 하나 샀다. 그리고 공동 제작을 했는데 그게 대박을 터트렸다. '저 하늘에도 슬픔이', 전 국민이 다 봤다는...갈고리로 푸대에 쓸어담은 돈은 그렇게 날아갔다.

한 번 혼난 이후에 형님은 영화업에서 다른 태도를 취한다. 대구와 부산에 영화를 배급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영화 수입 쿼터제가 생기면서 영화를 수입하려니 매년 몇 편의 영화를 찍어야했다. 그러니 그 영화들이 좋은 작품일 리 없다.

알랑들롱의 영화들을 수입해 배급하면서 점점 안정세를 취해가다 또 대박이 터졌다. '더티 댄싱'이었다. 그리고 충무로에 세들고 있었던 작은 건물을 사버렸다. 아~ 흥행업이란!

난, 프랑스문화원에서 영화를 즐기던 세대였다. 대학에서 연극을 하면서 별도로 양주별산대 팀을 이끌었고, 타대학의 산대놀이 공연을 연출했다. 5개대학 연극에서 명계남과 문성근 등을 만났다. 빠리에서는 친구의 석사학위 모노드라마 작품에 배우로 출연했다. 또 '칠수와 만수'를 감독한 박광수교수와 친분을...

형에게는 좋은 작품을 만들라고 했다. 내 또래의 젊은 영화인들을 후원도 하고... 당시 젊은 영화인들은 형님의 세대를 '충무로 세대'라 불렀다. 한마디로 꼰대세대!

그러다가 조금씩 작품에 욕심을 내더니 '수탉' 등으로 상을 받기 시작했다. 마지막 작품인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으로 해외에서 많은 상을 받았고, 유종의 미를 거두며 영화제작에서 은퇴했다. 3년간 '충무로영화제'를 부활시켰다가 호응이 별로 없어 문을 닫기도.

이젠 나이가 많이 들어 건강이 안 좋다. 친구가 얼마 전, 먼저 가셨다. 고 강신성일님!

[사진=도창환]


.

.

.

저작권자 ⓒ 더코리아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