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산의 시담(詩談)] 성례의 부엌

박미산 승인 2024.05.11 18:48 의견 0
박미산 시인, 작가 [사진=더코리아저널]


[박미산의 시담(詩談)] 성례의 부엌

보리밥이 설설 끓어 넘친다

자기 키보다 높은 가마솥 뚜껑을 민다

그 애가 부지깽이로 아궁이를 휘젓는다

솔방울 솔잎 나뭇가지 공책 나부랭이

그 애 손에 닿으면 모든 것이 불꽃이 되었다

아궁이 재가 흩어지고

연탄재 하얗게 쌓여가는 골목을 지나

석유곤로에서 밥물이 흘러넘치는 점심에

그 애는 현해탄을 건너갔다

밤마다 몰래 마실 나갔던 그 애

회초리를 들고 혼 내키던 그녀 엄마

그 애랑 놀지 말라던 나의 아버지

우리 둘이 짝사랑했던 창교도 세상을 떠났다

첫 남편의 주먹도

오빠에게 날린 전 재산도

두 번째 일본인 남편도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점괘란다

한파주의보가 내린 날

이제야 화병을 불로 누르는 법을 알았다며

물리도록 먹었던 보리밥과 푸성귀를 앞에 두고

젖어버린 그 애

먹어도 먹어도

배부르지 않은 말, 못했던 말들이

빨갛게 엉켜 타다가

푸른빛으로 변하다가

어느 순간 하얗게 사그라지는

저녁이 간다

-『흰 당나귀를 만나보셨나요』(채문사, 42쪽)

...

도화동은 마을이 세 군데가 있었다.

우리 동네가 선인재단에서 가장 가까웠기 때문에 제일 먼저 철거되었고 가운데 동네와 그 옆 동네는 나중에 철거되었다.

성례는 가운데 동네에 살았다.

그 애는 엉뚱 발랄했다.

그 애 엄마는 늦은 나이에 성례를 낳았다.

늙은 성례 엄마는 항상 쪽을 진 머리에 낡은 한복을 입으셨다.

공부에 관심 없던 그 애는 학교에 다니다 말다 하고 연애에 빠지기도 잘했다.

세 동네 사는 남자애들과 염문을 뿌리다가 헤어지곤 외항선원과 살았다.

그 남편은 주먹을 휘둘렀다.

아들 하나와 딸을 낳은 성례는 면목동에서 살다가 춘천으로 이사 갔다.

면목동에 살 때도 가끔 얼굴에 시퍼런 멍을 지닌 채 나의 직장으로 나를 찾아오곤 했다.

어디 부딪쳤다는 말로 얼버무리던 성례였다.

나도 결혼하여 딸 둘을 낳고 키우던 어느 날 그녀의 전화를 받고 청량리역으로 나갔다.

그녀는 얼굴과 온몸이 멍투성이였고 말도 제대로 못 했다.

애들 아빠의 폭력으로 이틀 동안 기절했다가 겨우 몸만 빠져나왔단다.

그 애를 병원으로 무조건 데려가서 진단서를 발부받아 줬다.

그녀는 이혼하고 아이 둘을 혼자 키우다가

아이들이 웬만큼 크고 나서 일본 시골 포도 농장주와 재혼했다.

*** 필자 소개 / 박미산

시인.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현대시 전공. 문학박사.

백석, 흰 당나귀 운영.

1993년 <문학과 의식>수필 등단

2006년 <유심> 시 등단

2008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등단

시집 『루낭의 지도』, 『태양의 혀』, 『흰 당나귀를 만나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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