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석 컬쳐인사이트] 조선 달항아리 회수 프로젝트에 관한 프리퀄 (2)

이홍석 승인 2024.04.23 05:57 의견 0
이홍석 문화평론가, 작가 [사진=더코리아저널]


[이홍석 컬쳐인사이트] 조선 달항아리 회수 프로젝트에 관한 프리퀄 (2)

‘달’을 왜 달이라 부르는지 묻지 않는다면 너무 당연한 말이어서 사람들은 이 ‘달’이란 단어가 어디에서 왔는지 생각조차 해보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달항아리는 왜 달항아리여야 했을까? 그 이름이 아름답게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고민하다 나는 결국 달을 왜 달이라 불렀을까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달에는 분명 어떤 숨겨진 이야기들이 있을 것 같았다.

달은 햇빛이 드는 곳, 들지 않는 곳을 가리키는 ‘양달’, ‘응달’과 같이 ‘땅’을 어원으로 두고 있는 우리말이다. 한반도의 지형은 대부분 산악 지형이고 조상들은 대대로 산을 중심으로 생활했기 때문에 달은 곧 ‘산’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이와 더불어 넓은 땅이라는 의미의 ‘들’은 ‘달’에서 유래되었다. ‘비탈’은 ‘빗’과 ‘달’의 합성어인데 ‘빗달’이 변하여 ‘비탈’이 되었다.

Recovering The Plunder No. 8(Moon Jar, 18C, Honolulu Museum of Art), Hongseok LEE

과거 서양에선 지구를 중심으로 태양이 도는지, 지구가 태양을 도는지 또는 배를 타고 바다 끝까지 가면 낭떠러지가 있어서 떨어질 거라며 위대한 신까지 개입시켜 다투고 있었는데, 그보다 훨씬 전인 고조선 시대(단기 4357년)에 이미 우리 조상들은 우주의 질서를 이해했고 행성의 모양을 알았으며 지금 우리가 아무 거리낌 없이 달이라 부르는 지구의 위성을 하늘에 떠 있는 산과 땅이라는 의미에서 지상의 그것과 같이 ‘달’이라 불렀다.

고조선(古朝鮮)은 1392년 태조 이성계가 세운 조선(朝鮮)과 구분하기 위해 옛 고(古)를 붙였으나 원래 국호는 조선이다. 후기 조선과 같은 이름이다. 여기서 조선이라는 국호에 학자들은 오랜 의문을 품었는데, 아침 ‘朝’에 고울 ‘鮮’이지만 해석하자면 ‘고운 아침’ 정도로 무언가 어색한 이름이다. 더군다나 ‘생선’ 선(鮮)으로 해석하면 ‘아침 생선’이라는 더 어처구니없는 뜻이 되고 만다.

19세기 후반, 조선이 서구권에 소개될 때, ‘The Land of Morning Calm(고요한 아침의 나라)’이라는 관용적 어구로 소개되었지만 역시 한자를 그대로 풀이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조선(朝鮮)’이라는 이름에는 무슨 뜻이 들어있었던 것일까? 이를 열심히 추적한 몇몇 학자들에 의해 최근에 중국의 고대 문헌과 삼국유사의 연관성을 찾아내서 어렵게 그 실마리를 풀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다시 ‘달’이라는 고대국가의 언어에 집중해야 한다.

Recovering The Plunder No. 9(Moon Jar, 18C, Private, Kyoto), Hongseok LEE

일연의 <삼국유사, 1281년> 고조선 편에 남겨진 ‘입도아사달 개국호조선(立都阿斯達 開國號朝鮮)’이라는 기록을 보면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세워 이름을 조선이라 하였다는 대목이 등장한다. 그런데 고대 조선의 언어에서 ‘아사’는 아침(朝)을 뜻하고 ‘달’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땅 또는 산(山)을 의미했다. 즉, 산악 지형이 발달한 한반도에 비로소 어울리는 이름이다. 아사달은 아침의 땅, 아침의 산이라는 의미이고 아침에 처음 밟는 땅 또는 산이라 해서 ‘앗달’로 불렀다고도 한다. 따라서 조선(朝鮮)은 고요한 아침이 아니라 ‘아침의 산’이라는 의미가 된다. 조선의 ‘선(鮮)’ 자는 한자의 소리를 빌려 썼거나 의미가 탈락한 경우라 학자들은 주장한다. 중국의 고대 문헌에서도 고조선을 산이 많고 해가 먼저 뜨는 곳이라 소개하는 것을 발견했다는 역시 관련학계 주장이다.

고조선에서 조선에 이르기까지 삼한(三韓)을 아우르던 한반도는 그야말로 ‘달’의 나라이다. 대한민국 역시 ‘달’의 나라이다. 그런 달의 국가에서 아름다운 ‘달’이라는 언어가 태어나고 그 언어는 다시 ‘달항아리’라는 세계적 문화유산을 남겼다. 누구보다 21세기 한국이 우주 강국이 되어 달에 가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달항아리에 대한 자부심이 아무리 지나치다 해도 과하지 않은 그런 위대한 정신을 우리는 조상들이 남긴 문화유산 안에 품고 있다.

Recovering The Plunder No. 10(Moon Jar, 17C, Private, Kyoto), Hongseok LEE

조선의 백자대호(白磁大壺)는 이 삼한의 땅과 역사와 우주를 아우르는 포괄적 개념이다. 그것은 현대에 들어서 달항아리로 해석되어 더 큰 정신의 확장을 꾀한다. 우리가 달항아리에 열광하는 이유에는 그것이 주는 편안함과 희귀성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어느 각도에서 보아도 모두 다른 모습을 가진 달항아리의 무한한 포용력과 확장성에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아무리 우주가 불친절한 실존주의자들의 무대라 할지라도, 달항아리는 친절하게 우리를 그 너머의 세계로 이끈다. 그러니 끝까지 잃어버린 우리 조선의 달항아리를 찾아올 필요와 당위성을 갖게 된다.

글 · 사진 이홍석,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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