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석 컬처인사이트] 한 잔의 에스프레소 그리고 메디치의 별

이홍석 승인 2023.11.27 08:33 | 최종 수정 2023.12.01 08:51 의견 0
이홍석 문화평론가, 작가 [사진=더코리아저널]


[이홍석 컬처인사이트] 커피의 맛과 향이 더욱 짙어지는 계절이다.

커피로 하루를 시작하고 고된 하루의 허리를 점심과 함께 커피로 이겨내는 직장생활은 이제 대다수 사회구성원에게 상식처럼 작동한다. 게다가 커피가 특별했던 기호식품을 넘어서 일종의 안전한 사회적 약속(초대하지 않은 누구도 방해할 수 없는 시간)으로까지 발전한 나름의 문화적 코드를 현대인은 스스로 읽어냈다.

이것은 최소의 심리적 안전거리와 시간 외의 노동을 강요받지 않을 권리 그리고 지나치게 밀도 높은 사회적 관계에서 개인과 개인들이 자연스레 숨을 쉴 수 있는 회복의 틈을 ‘커피(coffee)’라는 기표(signifiant)에 조화롭게 기의(signifié)를 설계한 21세기적 발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일찍이 커피 재배를 시작했던 아라비아에선, 커피는 보통 사람들의 금이며 그들 모두에게 고급스러움과 고귀함을 선사한다는 명언을 남겼다.

"Coffee is the common man's gold, and like gold, it brings to every person the feeling of luxury and nobility." - Sheik-Abd-al-Kadir

나의 하루도 역시 커피로 시작하고 그 하루의 허리 또한 커피로 버틴다. 작업실에 파묻혀 무언가에 몰두할 때면 커피를 끊임없이 마시기도 하는데, 작업의 집중이나 영감에 상당한 도움을 준다. 대게 커피는 아메리카노(Americano)나 롱블랙(Long Black) 형태로 마시지만 강렬한 휴식이나 무언간 ‘찐한 영감’이 필요할 때는 에스프레소(Espresso)를 만들어 한입에 털어 넣기도 한다.

혼자서도 충분히 에스프레소를 만들어 마실 수 있을 만큼 한국에서 유통되는 커피의 품질과 시장은 눈부신 발전을 거듭했다. 그 규모만 하더라도 연간 9조 원에 이를 만큼 비약적으로 거대해진 시장이다. 국민 브랜드인 다이소와 올리브영이 2023년 연간 매출 3조 원을 눈앞에 두고 있는 시점이니 커피 시장의 규모가 가히 짐작될 만하다.

커피 소비량과 품질에서 이미 세계적 수준의 커피 선진국이 된 한국은 2008년 <세계 자원 연구소>의 발표에서 1인당 연간 커피 소비량이 1.8kg으로 57위를 기록했었다. 당시 가까운 일본은 3.3kg으로 41위, 핀란드가 12kg으로 1위를 차지했다. 2위 노르웨이(9.9kg), 3위 아이슬란드(9.0kg) 등, 날씨가 추운 북유럽 국가들이 10위 권 안에 대부분 포진해 있다.

2020년 통계에선 한국의 1인당 연간 커피 소비량은 3kg으로 증가했고 단위를 잔으로 측정했을 때 1인당 367잔을 마시는 걸로 나왔다. 세계 평균이 161.3잔, 프랑스가 551.4잔, 미국이 한국의 뒤를 이어 327.4잔을 마셨다. 참고로 일본은 280.1잔, 중국은 9.1잔이다. 북유럽 국가들의 커피 소비량은 여전히 상위에 모두 포진해 있으나 잔 수로 기록되지 않았다. 어쨌든, 이는 한국의 커피 소비량이 세계 평균을 넘어선 것이다.

통계엔 빠졌지만, 정작 커피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나라가 이탈리아다. 대다수의 커피 이름은 이탈리아어에서 유래되었다. 누구나 하루 한 잔 정도는 마시는 아메리카노(Americano)부터 시작해서 에스프레소(Espresso), 카푸치노(Cappuccino), 카페라테(Caffellatte), 아포가토(Affogato), 샤케라토(Shakerato) 그리고 바리스타(Barista) 등 대부분 이탈리아어 일색이다.

특히 이탈리아 사람들의 에스프레소에 대한 애정은 대단히 각별하다. 최초의 에스프레소 머신은 1884년 토리노의 안젤로 모리온도(Angelo Moriondo)에 의해 만들어졌다.

에스프레소는 크게 네 가지로 분류되는데 에스프레소 리스트레토(Espresso Ristretto), 에스프레소(Espresso), 에스프레소 룽고(Espresso Lungo) 그리고 에스프레소 코레토(Espresso Corretto)로 분류한다.

리스트레토는 추출한 커피를 잔의 1/3 정도만 채우고 진하게 마시는 스타일이다. 설탕은 개인 취향이며 이탈리아 사람들이 흔히 한국의 박카스처럼 순간적으로 정신을 차리거나 피로 해소를 위해 마신다고 한다. 룽고는 좀 더 길게 커피를 추출하는데 양은 잔의 2/3 정도를 채운다. 설탕은 역시 개인 취향.

코레토는 주로 일을 끝낸 저녁에 즐기는 에스프레소인데 다양한 술을 첨가해서 마시는 것이 그 특징이다.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이탈리아의 바(Bar)에서는 아니스(Anise)로 만든 삼부카(Sambuca)라는 술을 첨가하는 것이 대중적이라 한다. 아니스는 팔각회향이라 불리는 허브로 겨울에 마시는 뱅쇼(Vin Chaud)에 들어가는 계피, 정향과 더불어 빼놓을 수 없는 재료이기도 하다.

그리고 기본 중의 기본인 에스프레소는 잔의 반 정도를 채우고 그냥 마시기도 하지만, 설탕과 초콜릿 또는 카카오 파우더나 크림 등으로 다양한 풍미를 내서 마실 수 있다. 에스프레소 기본형은 잔에 여유(room)가 반이나 남으니 자유롭게 다른 재료를 첨가하고 응용할 수 있어서 지역에 따라 다양한 풍미와 스타일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중에서 내가 즐기는 에스프레소는 이탈리아 베네토(Veneto)주에 위치한 파도바(Padova) 스타일이다. 커피를 설탕 위에 추출하고 그 위에 부드럽고 감미로운 크림을 얹은 후 카카오 파우더로 토핑을 마무리하는데 이만한 맛이 없을 정도(사실 파도바 앞에 ‘스트라파짜토 Strapazzato’를 한 잔 먼저 마셔야 더욱 맛이 살아나는)다. 특히 파도바에서 유명한 에스프레소는 크림에 민트를 살짝 섞은 ‘카페 페드로끼(Caffe Pedrocchi)’인데 간혹 열혈 ‘민초파’들이 이탈리아 여행 중 이것을 마시고자 파도바까지 수고롭게 방문하기도 한다.

Caffe Padova(Espresso, Cream, Cacao Powder)


커피에 관한 약간의 상식을 따라 이탈리아 파도바까지 왔다. 파도바에서 정작 하고 싶은 이야기가 남겨진 것이다.

파도바는 이탈리아 동북부 베네토주의 도시로서 유럽의 모든 도시 중에서 가장 문명화된 도시 중 하나일 것이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먼저 설립된 볼로냐 대학(1088년)에 이어 파도바 대학(Università degli studi di Padova)이 두 번째로 1222년에 설립되었는데, 이는 옥스퍼드 대학(1167년)과 소르본 대학(1200년)의 뒤를 이어 네 번째로 유럽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대학이다.

15세기 베네치아 공화국과 함께 파도바 대학은 최고의 황금기를 맞는데 17세기까지 국제적인 학문과 연구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는 베네치아 공화국이 그 어떤 학문과 연구에 대해서도 차별하지 않고 철저하게 자유를 보장하였기에 중세시대에 가능했던 일인데, 해부학의 창시자인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Andreas Vesalius, 1514~1564)에 의해 세계 최초로 운영한 해부학 교실은 근대 해부학 교육의 정립에 지대한 공헌을 남긴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리고 1592년 인류의 시선과 대우주의 방향을 바꾸어버릴 걸출한 인물이 파도바 대학에 등장하는데 바로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 1564~1642)가 그 당사자이다. 그는 18년간 파도바 대학에서 기하학, 천문학, 군사기술 등을 가르치며 자신만의 연구를 이어갔다.

갈릴레오를 말하자면 수많은 업적이 있겠지만 파도바 대학교에서 남긴 위대한 업적 중 최고의 백미는 천체망원경의 개발과 목성의 위성들을 발견한 대사건일 것이다. 갈릴레오는 네덜란드에서 멀리 있는 사물을 볼 수 있는 망원경을 만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연구와 개량을 거듭해 20배 배율의 천체망원경을 만들어냈다.

Galileo Galilei and His Telescope - Stefano Bianchetti


그리고 1609~1610년 사이 자신이 만든 천체망원경을 이용해 목성 주변을 관측하다 인류 최초로 목성의 위성들을 발견했다. 그 위성들은 21세기 현재 NASA를 중심으로 지구에서 가장 중요한 우주 프로젝트로 다루어지고 있는 바다가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위성들이다.

1610년 1월 7일 갈릴레오는 목성 주변에서 세 개의 위성을 최초 관측하였으나 다음 날인 8일 다른 관측에서 첫 번째(이오)와 두 번째의 위성(유로파)이 당시 망원경의 낮은 성능 때문에 서로 붙어서 관측된 오류를 발견하고 네 개의 위성을 발견했다고 발표한다.

그 네 개의 위성은 그리스 여신들의 이름을 붙여 각각 이오(Io), 유로파(Europa), 가니메데(Ganymede) 그리고 칼리스토(Callisto)라 불렀는데, 그중 유로파는 에베레스트산 높이의 20배에 달하는 물기둥을 분출하는 장면이 탐사선에 의해 촬영되어 바다가 있는 것으로 현재 우주 탐사에서 가장 중점을 두는 위성이 되었다.

갈릴레오의 이러한 천문학의 성과는 사실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였고, 지구가 고정되어 있다는 종교적 신념이 지배하던 시대에 목숨을 담보한 연구가 아닐 수 없다.

그는 자신의 저서 《시데리우스 눈치우스(Sidereus Nuncius) ; 별에서 온 메신저》에서 목성의 위성들을 발견한 소회를 이렇게 밝혔다.

“목성의 위성을 통해 우리는, 지구가 1년 주기로 태양 주위를 회전하고 있으며, 다시 그 지구 주위를 달이 돌고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 두려워한 나머지 코페르니쿠스 체계를 거부하고 우주의 이러한 체계마저 거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의심을 잠재울 수 있는 강력하면서 우아한 주장을 갖는다. 그리고 이제 우리의 눈앞에는 지구 주위를 도는 달처럼 목성의 주위를 배회하는, 그리고 그들 모두 12년의 공간을 태양 주위로 대회전 하는 궤적을 밟는 4개의 별이 펼쳐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이후, 갈릴레오는 자신이 발견한 네 개의 위성에 갈릴레이 위성(Galilean moons)이라는 수사가 붙었지만, 자신의 궁핍한 생활을 돌봐주고 연구에 아낌없이 후원한 메디치 가문의 수장인 코시모 2세 데 메디치(Cosimo II de' Medici, 1590~1621)에게 이 책을 헌정했는데, 그 과정에서 이오, 유로파, 가니메데 그리고 칼리스토, 네 개의 별은 ‘메디치의 별(Cosimo's Stars)’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물론 메디치의 별은 현재 천문학에서 공식 명칭이 아니다.

Jupiter and Moons(Io, Europa, Ganymede and Calistto) - Media Creadits : Kevin Gill


지구의 미래를 찾을 가능성이 있는 위성들의 발견이 바로 ‘파도바(Padova)’에서 갈릴레오에 의해 이루어졌고, 당시의 세계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에 한 발 더 가깝게 다가설 수 있는 또 하나의 증거를 파도바에서 하늘을 관측하며 발견했다.

이는 파도바 대학교가 아니었다면, 베네치아 공화국의 학문과 연구에 대한 자유로운 인식이 없었다면, 오페라의 시초를 만들고 미켈란젤로, 보티첼리, 갈릴레오 등 수많은 예술가와 학자들을 지켜낸 메디치 가문과 같은 후원자가 없었다면 가능할 리 없었을 것이다. 메디치는 철학을 위해 플라톤 아카데미를 설립했고, 갈릴레오를 초빙하여 과학 아카데미도 설립했다. 전 세계의 고전과 희귀도서를 수집하여 이들 학자와 예술가들이 볼 수 있도록 하였다.

파도바엔 갈릴레오를 포함해 이곳 출신이거나 연관이 있는 88명의 학자와 예술가들의 석상이 세워졌는데 나폴레옹 침략 당시 10개가 파괴되면서 현재 78개만 남아있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 종교재판소는 갈릴레오의 천체망원경을 통해 관측된 내용 자체엔 아무런 의문을 표하지 않았다. 다만 개신교의 등장으로 교회의 권위가 흔들리던 시점이었기에 일개 평신도에 불과한 과학자가 성경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지구를 중심으로 도는 천상계를 주장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론에서 벗어나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의 연구를 받아들이기엔 당시 교회로서도 힘이 들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눈앞에 내민 증거를 무시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사실과 달리 떠도는 괴담처럼 교회가 갈릴레오를 지하 감옥에 가두거나 고문을 했다는 말은 과학적이지도 종교적이지도 않은 설명이다. 가택연금 정도로 갈릴레오의 입을 막고자 했던 것이 전부다.

오늘의 나는, 이런 과학적 도전과 성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천문학에 뒤떨어지고 우주과학에 대한 투자와 통찰이 부족한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 우리는 그들이 전해 준 지식을 통해 우주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고, 또 나와 물리적 세상의 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지금의 이 길을 밝혀준 이탈리아 파도바에서 일어났던 위대한 사건들이 전혀 무관한 것이라 말해서는 안 될 것이다.

갈릴레오 이후, 인류는 한 개인의 노력이 아닌 국가와 국가들이 연합하여 공동의 힘으로 거대한 천체망원경을 개발하고 우주로 보냈다. 1996년 NASA를 기점으로 시작된 우주 관측 프로젝트는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1년이 되어서야 완성이 되었고, 같은 해 12월 25일 성탄절에 우주로 쏘아 올린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James Webb Space Telescope)’은 허블 상수에 더해 우주의 나이 138억 년을 밝혀냈다. 무려 25년 동안 1만 명이 넘는 과학자들과 엔지니어들이 참여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루어낸 성공, 우리는 지금 그 ‘제임스 웹’으로부터 단 한 번도 관측하지 못했던 말 그대로 천문학적 우주의 정보들을 받아보고 있다.

James Webb Space Telescope


그야말로 허블 망원경에 이어 천문학의 황금기를 맞은 것이다. 그동안 성운(Nebula)의 가스와 먼지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별들도 ‘제임스 웹’의 적외선 촬영으로 명확하게 관측이 가능해졌다. 더군다나 ‘제임스 웹’의 데이터는 전 인류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허락되었다. 바로 파도바 대학교의 탐구적 정신의 구호처럼.

'Universa Universis Patavina Libertas : 파도바의 자유, 그 누구에게나, 그리고 모두를 위하여)’

Pillars of Creation, 6,500 Light Years - NASA


내가 에스프레소 파도바(Espresso Padova) 한 잔을 만들어서 마시는 행위에는 이런 인간의 무한한 과학적 탐구와 이단의 혐의 앞에서도 오류를 바로잡으려 했던 용기와 진정한 후원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것이라 말하면 좀 거창한 것일까?

지금도 목성의 위성 중 가장 주목받는 네 개의 별 : 이오, 유로파, 가니메데 그리고 칼리스토는 인류의 과거와 동시에 미래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다. 2024년 10월 NASA는 본격적으로 유로파 위성을 탐사할 ‘유로파 클리퍼(Europa Clipper)’를 보낼 예정이다.

1610년, 이탈리아 베네토주의 파도바에서 움직인 나비의 날갯짓이 인류를 목성의 구석구석으로 이끌고 있다. 최초의 날개가 펄럭인 그런 도시에서 마시는 에스프레소 한 잔의 가치는 형용하여 말할 수 없는 기쁨일 것이다. 만일 당신이 이탈리아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꼭 추천하고 싶은 유럽의 최대 명문 도시이다.

글 · 사진 이홍석, 2023

***참고로 라틴어 어원을 그대로 직역해 ‘별세계의 사자’라 부자연스럽게 번역한 것에 나는 거부감이 들어 라틴어를 영어로 번역한 ‘Sidereal Messenger’와 갈릴레오가 훗날 이 논문에 대한 제목의 설명에서 자신을 하늘에서 온 사절로 엄숙하게 포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는 말을 참고해 대중이 이해하기 쉬운 ‘별에서 온 메신저’ 정도로 의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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