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장인을 만나다] 제주도 구좌읍 평대리 모녀 해녀... 바다에서 배우는 생의 지혜
(대담 김순국 기자)
박숙희(72세,어머니)와 고려진(42세,딸)... “숨을 참는 일, 그건 삶을 버티는 힘이지요”
두 해녀 이야기는 결국 바다의 이야기이자,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우리가 잊고 사는 ‘숨의 시간’을 일깨우는, 가장 인간적인 철학.
두 해녀는 오늘도 제주 바다 어딘가에서 숨을 참으며,
생의 깊은 푸른빛을 채집하고 있다.
■ 바다가 가르친 생명, 그리고 연대
박숙희 씨의 말에는 늘 ‘우리’가 있다.
“물벗(해녀 동료)들은 가족이에요. 누구 한 명이라도 안 나오면 다 걱정돼요.
바다에서 함께 숨을 나눈 사이니까요.”
그녀는 40년 넘게 한 해녀마을에서 함께 물질해 온 동료들과 매년 바다제를 지낸다.
“바다는 먹을 걸 주기도 하지만, 목숨을 가져가기도 해요.
그래서 늘 감사해야 해요. 제삿날엔 우리가 바다에 인사하죠.
‘오늘도 우리를 살려줘서 고맙다’고요.”
기후변화로 바다의 온도와 생태가 바뀌고 있다.
“요즘은 옛날 같지 않아요. 바다 색도 달라졌어요. 그래도 우린 나가요.
그게 우리 일이니까요.” 그녀는 고무옷을 털며 담담히 말했다.
■ 전통을 지키는 손, 미래를 바라보는 눈
고려진 씨는 지금 주 3회 이상 물질을 한다.
“바다는 내 친구예요. 내가 말 안 해도 다 알아요. 오늘은 내가 슬픈지, 기쁜지.
바다는 나를 키워줬고, 이제는 내가 그 바다를 지켜야죠.”
그녀는 최근 어촌계와 함께 ‘해녀 기록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고 있다.
“우리가 가진 기술과 이야기를 남겨야 해요. 그래야 다음 세대가 우리를 잊지 않아요.”
그녀의 바람은 단순히 직업의 명맥이 아니라,
‘삶의 철학’을 전하는 일이다.
▶ (김순국 기자 인터뷰 대담)
1.해녀의 길을 선택하게 된 시기와 이유;
-기자: 어릴 때부터 바다와 함께 살아오셨다고 들었습니다. 처음 ‘물질’을 하게 된 기억이 어떻게 남아있나요?
-.박숙희: 친정어머니도 해녀셨다. 어머니 물질하는 곳에서 놀면서 자연스레 배우게 되었다. 처녀 때 경찰서 타자수로 일하기도 했으나 결혼 후 적극적으로 물일을 해왔다.
-고려진: 어렸을 때 매해 어린아이들이 물가에서 놀다가 익사 사고가 있어서 부모님이 물가에 가는 것 자체를 반대하셨다. 수영조차 배우지 않았다. 결혼과 출산을 하면서 우울증 때문에 힘들어할 때 어머니의 권유로 30세에 뒤늦게 물일을 시작했다.
2.바다와의 첫 대면:
-기자: 처음 잠수했을 때 느꼈던 감정 중 두려움, 설렘, 경외감, 놀람 등 어떤 것이었나요?
-박숙희: 어려서부터 바다에 익숙해서 특별한 두려움은 없었다.
-고려진: 바다는 두려운 대상이었다. 수영도 제대로 배우지 않았고 다리에 쥐가 나 물을 기피했다. 결혼 후 몸이 힘들어야 우울할 틈도 없어질 것이라는 어머니의 권유로 물에 들어섰지만 두려움을 떨치기는 쉽지 않았다.
3.‘숨비소리’의 의미:
-기자: 해녀에게는 숨비소리가 단순한 숨소리가 아니라 생의 신호라고 들었습니다. 선생님께 ‘숨’ 은 어떤 의미였습니까?
-박숙희: 나는 숨을 참고 참다가 내뿜으면 ‘아, 살아났구나~“하는 안도감의 숨이었다. 어두운 바다 속에서 ’도와주세요‘하고 기도했기에 숨을 뺕으면 누군가 나를 살려주셨구나 하고 생각했다.
-고려진:숨비소리를 내면 숨이 빨리 제정상으로 돌아온다. 각자의 소리가 다 달라서 소리만 들어도 누가 물위로 올라왔는 지 알 수 있다. 서로에게 신호를 보낼 수 있는 특별한 소리다.
4. 삶의 철학과 해녀 정신:
-기자: 바다에서 배운 가장 큰 인생의 가르침은 무엇이었나요? (바다가 해신이나 선생님이라면 내게 가르쳐준 인생의 가르침은)
-박숙희: 욕심부리지 말라는 것을 배웠다. 7미터이하로 내려가면 귀에서 신호가 띵 띵 온다.
-고려진: 바다에서 물일하면서 이웃삼춘분들에 대해 놀라움과 존경심을 배우게 되었다. 바다는 욕심을 내면 혼을 낸다. 이웃어른들이 다 스승 같았다. 사람에게 완급을 깨닫도록 한다.
5. 공동체의 힘:
-기자: 해녀들은 서로를 ‘물벗‘이라고 부르며 서로를 돕는다고 합니다. 그 유대감은 어 떤 때 어떤 형태로 보여지나요?
-박숙희: 해녀공동체는 가족 같다. 공동으로 물일을 나갈 때 실력들이 상중하로 차이가 있더라도 똑 같이 수확량을 나누고 공금을 따로 모으기 때문에 불만이 없다.
-고려진: 누구 숨비소리가 안들리면 그 물벗을 같이 찾게 된다. 그래서 유대감이 저절로 깊어진다. 조류에 밀려갈 때나 물건이 무거워 힘들 땐 같이 들어준다. 애기 키우는 것도 순번을 정해 돌아가면서 애기를 돌봐주면서 서로를 돕기 때문에 친자매 친부모같은 정이 깊어진다.
6.기후변화와 생태위기:
-기자: 최근 바다의 온도나 해조류의 변화로 어려움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중국에서 밀려오는 나쁜 해초나 생명체도 있다는 데 어떤가요?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이고 문제가 무엇인가요?
-박숙희와 고려진: 수온이 올라가서 원래 생명이 죽던가 떠났다. 수확량이 확 줄었다. 해조류가 줄어드는 것은 먹이가 줄어든다는 의미이다. 모자반이 썩어가는 것이 큰 문제다. 백화현상으로 돌도 썩어가는 것이다. 해산물이 자연 없어지는 것은 제주도 전역의 큰 문제가 되었다.
7.전통과 젊은 세대:
-기자: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 해녀의 삶을 어떻게 소개하고 싶으신가요?
따님이 해녀일을 하시는 것을 추천하셨나요?
-박숙희:무조건 권유한다. 공무원보다 수입이 좋다. 연금도 나온다. 우리 평대해녀회에 13명이 최근 가입하였다. 나는 선생으로 호흡을 조절하는 법과 요령을 가르쳐주고 있다. 고무옷도 무상으로 주고 의료비도 무료다. 혜택이 좋으므로 자신을 잘 훈련시키면 평생 업으로 수입이 너무 좋다.
-고려진: 전문직여성으로서 자기 시간을 내 일할 수 있고 수입은 좋다. 만족도가 높고 대우도 좋아졌다. 나는 얼마전 로마에 가서 세계적인 해녀 인증서를 받고 돌아왔다. 아이를 키우면서도 할 수 있어서 좋고 경제적 수입이 좋아서 권유하고 싶다. 사회적 인식이 매우 긍정적으로 변했다.
8.여성으로서의 자존과 강인함:
-기자: 해녀의 삶은 여성의 노동이자 예술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성으로서 이 길을 걸으며 어떤 자부심을 느끼셨나요?
-박숙희: 나는 40년 해녀의 삶을 살 수 있엇던 것이 행운이었다. 바다는 나의 보물창고다. 다섯아이들을 다 전문대학까지 보냈다. 남편이 중풍으로 내가 가장이 되었을 때도 18년간 간병하면서도 해녀일을 했다. 나는 해녀로써 인정받았고 제주도 자문의원, 수협의 이사로 많은 단체활동을 해왔다. 나는 해녀로써 성공한 삶을 살 수 있었기 때문에 감사한 마음이다.
-고려진: 바다 속에서 숨을 참으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육상에서 어떤 일이든 할 수 있음을 증명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강인해졌고 바다가 너무 좋다.
9. 가장 기억에 남는 바다의 순간:
-기자: 위험했던 일, 혹은 잊지 못할 장면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박숙희: 하나 더 전복을 따려는데 띵해지면서 아득해졌다. 동료들이 나를 끌고 나왔기에 살 수 있었다. 그때 아 바다는 욕심을 부리면 혼을 내주는구나 생각해서 7미터 이하로는 가지않는다. 그때 한쪽 귀 이상이 생겼다.
-고려진: 엄마가 25년간 우리 평대해녀회 회장으로 계시는 동안 사망사고가 한 건도 없었다. 나는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돌고래들이 일 년에 한 번씩 수 백마리가 모여 노는데 나의 몸을 툭툭 치면서 장난쳤다. 경이로운 체험이었다. 돌고래들은 사람을 물지않고 같이 놀고 싶어한다는 걸 체험했다.
10. 앞으로의 꿈
-기자: 해녀 인생 40년 , 앞으로 이루고 싶은 바람이나 후배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으신가요?
-박숙희: "나는 현재 72세다. 아직 건강하여 기분이 나고 날씨가 괜찮으면 물질을 할 수 있다. 소라, 미역, 성게, 전복 등을 체취해서 바다에서 나올 때 참으로 행복하다. 후배들도 계속 정년이 없이 일을 할 수 있는 물질을 고비를 잘 넘기면서 행복을 찾기를 바란다".
-고려진: "나는 12년차 해녀로써 어머니처럼 경제적으로 당당한 여성으로 살아갈 것이고 그럴 수 있다는 것에 매우 자부심을 느낀다. 다만 바다가 병들어 가고 있어 생명들이 줄어들고 사라지고 있는 것이 매우 안타깝다.
나는 해녀 후배들이 많아지는 것을 환영한다. 해녀공동체로 활동하는 것은 세상에 매우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해녀공동체가 활성화되기를 바란다"
"나는 로마에 가서 세계 해녀 인증서를 받았고 88올림픽 때는 성화봉송도 바다에서 했다. 어머니는 이미 20년 전 전국체전에서 성화 점화를 하신 분이다. 이런 영광스런 활동도 후배 해녀들이 쭉 이어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코리아저널 제주 시민기자, 시인 김순국)
박숙희(72세,어머니)와 고려진(42세,딸) [사진=김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