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미경(체칠리아) 조각가 [사진=더코리아저널]


[더코리아저널 김기정 기자] “흙 속에서 신앙을 빚다 ... 젊은 성인을 조각한 예술가 손미경(체칠리아)의 고백”

(대담 김기정 기자 / 더코리아저널 기획취재)

지난달 16일, 가톨릭평화방송·평화신문 본사 앞마당에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하느님의 인플루언서’로 불리는 **성 카를로 아쿠티스(1991~2006)**의 성상이 축복식과 함께 세워진 것이다.
청바지와 티셔츠 차림의 젊은 성인은 전통적인 성상들과 달리 현대 청년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 얼굴엔 맑은 평화가, 두 손엔 하느님께 향한 열정이 묻어난다.
이 작품을 제작한 이는 손미경(체칠리아) 조각가. 그녀는 “조각은 제게 기도이며, 신앙의 고백”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카를로 아쿠티스 성인 성상 [사진=더코리아저널)


■ 하느님의 부르심 앞에 겸손히 선 젊은 영혼을 표현

손미경(체칠리아) 조각가는 성상 제작 의뢰를 받았을 때, 처음엔 막막했다고 털어놓았다.
“토가를 걸친 전통 성인상이 아니라, 청바지와 운동화를 신은 21세기 청년이었거든요.
그 안에 ‘성스러움’을 어떻게 담아야 할지, 한동안 조각칼을 들지 못했습니다.”

그녀의 작업은 지난해 11월 시작됐다.
흙을 다듬는 손끝은 기도하는 손 같았다.
“카를로 아쿠티스 성인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하느님과 연결되어 있었어요.
저도 그 마음을 닮고 싶었습니다.”

성상은 컴퓨터를 곁에 둔 채 맨발로 서 있는 모습이다.
청소년 시절 카를로는 성체의 신비를 전 세계 온라인에 알린 인물로,
‘인터넷의 복음 전도자’로 불린다.
손 조각가는 이 상징을 작품에 녹여냈다.

“성인은 컴퓨터를 통해 복음을 전했어요.
그 도구는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하느님을 알리는 창문이었죠.
맨발은 복음의 열정, 하느님의 부르심 앞에 겸손히 선 젊은 영혼을 표현한 것입니다.”

"성상이 주는 메시지는 성상 조각의 발아래 새겨진 성인의 메시지라고 봐야조~"

카를로 아쿠티스 성인 성상 조각 받침대에는 '태양 앞에 서면 검게 그을리지만, 예수님 앞에 서면 우리는 성인이 됩니다' 라고 문구가 새겨져 있다.

"그리고 저의 피정과정에서 다른 한 장면이랑 겹치는 것이 있는데요, 제가 왜관 수도원에 갔을때 신부님 통해 묵상 한건데,

"그러니까 누구나 어느 한가지 원본으로 태어나지만 많은 사람이 복사본으로 죽습니다" 라고 하셨던 그 말씀이 겹쳐져 생각 되었어요" (아니 어떻게 이런 말씀을 해주셨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저가 아쿠티스 성상을 만들면서, 제가 가졌던 것은, 젊은 성인의 성상에서 요즘 젊은이들에게 마음에 남는 메시지도 전하고 각자의 소명도 느끼면 좋겠어요,"라고 했다

"요즘 젊은 세대들이 다 자기에게 주어진 어떤 소명을 가지듯이 자기능력으로 살다 가기보다는 어떤 빛을 따라가는 불나방 처럼 달려들어서 남들처럼 살기를 원하는 세상이 되다보니 안타깝꾸나" 라는 마음이 저한테 있었는데,

제가 이번 성상을 만들면서, "이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각자 지닌 고유한 능력과 일을 통해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는 희망을 보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 “조각은 제게 기도였습니다”

손미경(체실리아) 조각가의 조소인생은 어린 시절 흙을 만지던 순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손끝에서 형태가 만들어질 때마다 설명할 수 없는 기쁨이 있었어요.
그때부터 제 인생의 길은 정해져 있었던 것 같아요.”

조소를 전공하고 일본 쓰쿠바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녀는
인체의 구조와 생명감을 연구하며 예술적 정밀함을 쌓았다.
그러나 단순한 조형미보다 그녀를 끌어당긴 것은 ‘형태 너머의 빛’이었다.

“2006년 가톨릭대 개교 150주년 기념 이냐시오 피정에 참여했을 때, 제게 시각적인 심상이 주어졌습니다.
그건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 ‘조각으로 하느님을 증언하라’는 부르심 같았죠.”

그 이후로 그는 십자고상, 성모자상 등 성상 조각에 전념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신앙’을 형태로 드러내는 작업을 이어왔다.


“성상 조각은 예술이지만 동시에 봉헌입니다.
내 안의 교만을 비우고, 오로지 하느님을 담아내는 과정이지요.”

"나의 성상 제작은 내가 그때 하나님이 주신 나의 소명을 깨닫고 느낀 마음을 전하고자 했습니다"

카를로 아쿠티스성상과 이 작품을 제작한 손미경(체칠리아) 조각가. [사진=김기정 기자]

■ “젊은 성인은 우리에게 희망을 줍니다”

손미경(체칠리아) 조각가는 카를로 아쿠티스 성인의 일대기를 접하고
그의 ‘평범함 속의 거룩함’에 깊이 매료됐다고 한다.

“카를로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주어진 일에 충실했고, 작은 선행을 기쁨으로 실천했어요.
그런데 그 평범함 속에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 얼마나 깊었는지,
그의 삶이 곧 복음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이번 작품이 “청년들에게 주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는 영감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요즘 청년들은 경쟁과 피로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리기 쉬워요.
그들이 이 성상을 바라보며, ‘나도 이렇게 살 수 있구나’ 하는 희망을 느꼈으면 합니다.”

성상앞에서 손 조각가는 지나가는시민에게 카를로 아쿠티스 성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김기정 기자]

■ 예술과 신앙, 두 길의 만남

조각가로서 손미경(체칠리아)에게 예술은 단순한 창작이 아니라 기도의 행위다.
그녀의 조각칼은 묵주처럼 손에 익었고,
그 손끝에서 흙은 사람의 형상을 넘어 영혼의 향기를 품는다.

“성상은 보는 이의 마음을 하느님께 향하게 해야 합니다.
아무리 섬세한 기술이라도 신앙이 없으면 생명이 없어요.”

이번 작품을 통해 그는 “예술이 신앙의 통로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예술은 하느님께서 주신 은사입니다.
그분의 뜻 안에서 사용될 때,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고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어요.”

조각가 손미경(체칠리아)의 성상제작 소명은 이냐시오 영신수련 피정 참여하면서 부터다.

그때 7박 8일의 침묵 피정 중에 주님께서 시각적 심상들을 보여주셨다.

"침묵 묵상중 어느 순간 나에게 보여줬던 영상이 있어요, 지금 고통 속의 나에게 하느님께서 어떻게 나한테 힘을 쓸 수 있지? 나는 이렇게 살고있는데 앞으로 어찌 살아야 하지? 뭐 이런 의문이 들었을 때, 제가 어느 순간 제 몸을 이렇게 들여다보는 순간,

커다란 아취형 창문 앞에 큰 나무형태와 그 아래 노란 색깔의 은행알처럼 생긴 작은둥근 씨앗이 반짝반짝 빛나면서 '나 여기 있어~' 하며 씨앗을 보여주는 거예요,"

그래서 "이세상 사람들이 태어날때 하느님이 은행알 같은 씨앗을 딱 하나씩 주셔서 자기 소명을 심어놨는데, 제가 기도하는 하나님이 내가 창작활동을 할 수 있게 하시는구나 깨달음이 왔어요"

"그순간 나를 채웠던 슬픔을 눈물로 비우면서 이제부터 그분의 뜻대로 살면, 이게 힘을 발휘해서 나를 일으켜 세우고, 나의 씨앗을 단단히 꽉 채우는 일이구나 느꼈어요,"

"그 영상은 하느님께서 내가 잘못 살면, 내가 필요한 사람이 아니면, 내가 썩어서 시들어져서 없어지는 사람이 될수도 있다는 생각을 준거에요"

그래서, "우리가 할 일을 주신 이 씨앗을 소중히 간직하고, 이 씨앗을 키워서 내가 비우고 채워서 하느님 일을 하는 거야,"다짐했다.

"하느님 이분이 나한테 들어오셔서 이 세상에 하고 싶은 일을 그대로 할 수 있게끔 일을 시키는 구나" 라고 생각했다.

■ “흙 속에서 하느님의 미소를 찾다”

성상 설치식이 끝난 후, 그녀는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이 흙덩어리가 정말 ‘사람’이 되도록 도와주신 분은 하느님이세요.”
그녀의 눈가에 맺힌 눈물엔 감사가 묻어 있었다.

손미경(체칠리아) 조각가는 다음 작품으로 ‘평화의 성모상’을 구상 중이다.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하지만, 하느님은 늘 변함없어요.
그분의 평화를 사람들에게 전하는 조각을 계속 만들고 싶습니다.”

손미경(체칠리아) 조각가의 작품은 단순히 흙과 돌의 결합이 아니다.
그 속엔 ‘살아 있는 믿음’이 있다.
그녀의 손끝에서 흙은 기도로 빚어지고, 그 기도는 형태가 된다.
그리고 그 형태는 오늘도, 청년들에게 속삭인다.

“거룩함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당신의 일상 속에서도 하느님은 미소 짓고 계십니다.”

카를로 아쿠티스 성인의 일대기 안내 기념비 [사진=김기정 기자]